안녕하세요, ybp입니다. 오늘은 제가 8살 꼬마였던 1990년대, 지구 반대편 남미로 떠났던 저희 가족의 강렬했던 이민 첫날 이야기를 기록해 보려 합니다.
1. 낯선 땅, 브라질 포스 두 이구아수(Foz do Iguaçu) 도착
1990년 10월, 저는 대한민국에서 국민학교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생애 첫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미국을 경유하는 긴 여정 끝에 도착한 곳은 브라질의 포스 두 이구아수(Foz do Iguaçu) 공항이었습니다.
공항에는 태어나서 처음 뵙는 사촌 형님이 이모부의 일본인 친구분과 함께 저희 가족을 마중 나와 계셨습니다. 낯선 환경과 서먹한 인사도 잠시, 저희는 차를 타고 곧장 브라질과 파라과이의 국경을 넘었습니다. 그 국경 검문소를 통과하는 순간, 우리 가족의 치열한 이민 잔혹사이자 희망사가 시작되었습니다.
2. '한국 동네'에서의 첫날 밤과 8살 소년의 눈망울
파라과이에 도착해 저희 가족은 한동안 이모님 댁에서 머물기로 했습니다. 당시 이모네 집은 한인들이 모여 살던 일명 '한국 동네'라는 단지 안에 있었습니다.
아직도 기억나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모네 집 창밖을 내다보니 단지 내 놀이터에서 제 또래 한국 아이들이 북적이며 놀고 있더군요. 당장이라도 달려 나가 친구가 되고 싶었지만, 낯선 이국땅에 갓 떨어진 이방인 소년에게는 사촌 형들 곁을 지키는 것이 최선이었습니다. 그 간절했던 마음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3. 90년대 남미 국경 지대의 독특한 경제: '봇다리 장사'
당시 이 도시의 한인 사회는 약 1,000명 미만의 작은 규모였습니다. 하지만 그 경제적 활력은 대단했습니다. 거주 한인의 95% 이상이 도매업에 종사했는데, 주요 고객은 국경을 넘어온 브라질 사람들이었습니다.
비즈니스 구조: 파라과이의 무관세 혜택을 이용해 물건을 들여온 뒤, 이를 브라질로 유통하는 일종의 '국경 무역(봇다리 장사)'이 주축이었습니다.
가격 경쟁력: 예를 들어 브라질 내 정식 관세 제품이 100불이라면, 파라과이 국경 시장에서는 20~30불 수준으로 구매가 가능했기에 엄청난 시세 차익이 발생했습니다.
토요일의 풍경: 매주 토요일 오후 5시가 되면 피크를 이뤘습니다. 브라질 전역에서 몰려온 관광버스가 각종 물건을 가득 싣고 국경을 넘기 위해 끝없이 줄을 서던 풍경은 그 시절 남미 이민 경제의 상징과도 같았습니다.
4. 이민자가 되어 세상을 배운다는 것
그때는 장사가 무엇인지, 우리가 있는 곳이 정확히 어디인지도 모르는 철부지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저는 부모님께 저를 해외에서 키워주신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단순히 영어를 배우거나 넓은 세상을 본 것 이상의 '결정적인 이유'가 있기 때문인데요. 그 이야기는 제 이민 생활의 다음 에피소드에서 자세히 풀어보겠습니다.
